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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빌딩 자살테러 사건
美呼빌딩 自殺테러 事件
Miho Tower Suicide Terror
폭발 후 붕괴되는 미호센트럴빌딩
발생일
2019년 10월 17일, 6주년
발생
위치
파일:유고랜드국기.png 아부 쿠찬 셔번 미호로 6 미호센트럴빌딩(월배지구, 3813)
유형
자살 테러
원인
극에 달한 사교육 열풍
테러 가담자
디티어수학학원 고등5반
미호일반과학고등학교
김혁(2학년), 박선현(2학년), 채신우(1학년)
월배중앙고등학교
이지유(3학년), 정인환(2학년), 유태준(2학년)
이현고등학교
김해원(1학년), 한솔현(2학년)[1]
미호중학교
이해랑(3학년), 최우빈(3학년)
진천중학교
서은준(3학년)
피해
재산
피해
미호센트럴빌딩 완파
천일금강타워 붕괴
유월메디컬플라자, 월동빌딩, GK신림빌딩, 송현타워 반파, 주변 상가 일부 손상[2], 미호원일아파트 107, 108동 외벽 손상
사망
387명
부상
576명 이상
여파
• 대테러 대응 체계 강화
• 극도로 열악한 유고랜드의 학생 인권 대두

1. 개요2. 배경3. 전개
3.1. 폭발 이후
4. 피해5. 여파
5.1. 교육계 및 사회적 반향5.2. 학생 인권에 대한 정책 변화5.3. 까발려진 만연한 부실공사
6. 관련 인물7. 반응
7.1. 종합7.2. 국내7.3. 국외
8. 이후9. 매체
9.1. 서적9.2. 영화9.3. 드라마9.4. 다큐멘터리9.5. 그 밖에9.6. 당시 방송 및 뉴스
10. 기타11. 관련 문서

1. 개요 [편집]

미호빌딩 자살테러 사건(美呼빌딩 自殺테러 事件, Miho Tower Suicide Terror)은 2019년 10월 17일 오후 9시 59분경, 아부 쿠찬 셔번 월배지구의 미호센트럴빌딩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 및 붕괴 사건이다.

폭발 이후 387명이 사망하고, 576명 이상이 부상을 입은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남겼다. 이는 유고랜드 역사상 최악의 단일 테러 사건으로 기록되었으며, 동시에 학생 인권, 사교육 실태, 건축물 안전 문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논쟁을 촉발시켰다.

2. 배경 [편집]

3. 전개 [편집]

2019년 10월 17일 오후 9시 59분, 미호센트럴빌딩 5층 동측 복도 중앙에서 갑작스러운 섬광과 함께 굉음이 터졌다. 폭심지는 5층 학원 구역의 계단실 인근이었으며, 좁은 복도와 밀폐된 구조 때문에 폭압이 한 방향으로 길게 뿜어져 나갔다. 강의실 내부에 있던 책상, 의자, 화이트보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부서져 복도를 채웠고, 폭발 직후 밀려나간 압력파가 유리창 수십 장을 동시에 박살내면서 바깥으로 흩날렸다.

불과 몇초 뒤, 폭발의 열기와 화염이 천장 안 배관과 전선 덕트로 번지면서, 5층 전역에서 화염이 들불처럼 퍼졌다. 천장 재질이 경량 석고와 합판이어서 불길은 수 초 만에 철골 구조물에 도달했고, 이 철골이 팽창·변형되면서 5층 바닥 슬래브 일부가 주저앉았다. 붕괴 충격이 바로 4층으로 전달되며 콘크리트 조각과 철근이 비처럼 쏟아졌다. 그 아래층에 있던 병원 대기실은 순식간에 매몰구역이 되었고, 환자와 의료진 수십 명이 그 자리에서 참변을 당했다.

폭발 순간, 6층과 7층에서는 바닥이 솟구치듯 들려 올라가면서 집기류가 천장에 부딪힌 뒤 떨어졌다. 8층의 학원 강사들과 학생들은 흔들림과 함께 천장에서 석고 조각과 형광등이 떨어지자 비명을 지르며 계단 쪽으로 몰렸으나, 이미 위층의 구조물 변형으로 계단 일부가 무너져 이동이 불가능했다. 창문으로 몸을 내밀어 구조를 외치는 사람들이 속속 보였다.

폭발로 인한 진동은 건물 전체에 파도처럼 번졌고, 특히 동측 주요 기둥 두 개가 5층에서 거의 절단되다시피 손상되었다. 불과 10초 만에 기둥 하중이 서측으로 쏠리면서 구조 균형이 무너졌고, 건물 상부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5층과 그 위층의 외벽이 갈라지며 대형 유리 패널과 콘크리트 조각이 대로변으로 떨어졌다.

미호센트럴빌딩 바로 좌측에 있었던 천일금강타워의 기초부에서는 이미 미미하게 진행 중이던 균열들이 폭발의 진동을 계기로 급격히 확장되었다. 콘크리트 기둥과 철근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삐걱’ 하는 금속성 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려 퍼졌다. 수분 만에 기둥 내부에 누적된 응력은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했고, 지반과 접하는 기초부가 불안정해지면서 건물 전체의 구조 안정성이 크게 약화되었다.

천일금강타워의 붕괴가 시작된 시점은 미호센트럴빌딩 폭발 10분 후였다. 하층부에서 먼저 구조적 붕괴가 진행되었으며, 이후 상층부까지 순차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 과정은 몇 차례에 걸친 강한 흔들림과 무거운 잔해 낙하가 반복되면서 극심한 소음과 먼지 구름을 동반했다. 붕괴 순간, 건물은 주변 건물과 도로를 강타하는 강력한 충격파를 일으켰으며,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먼지 구름은 미호빌딩 붕괴로 인한 분진으로 뒤덮인 하늘을 더 짙게 덮었다.

이때 발생한 먼지구름과 폭풍은 반경 수백 미터에 영향을 미쳤다. 인근 유월메디컬플라자, 월동빌딩, GK신림빌딩, 송현타워는 폭풍과 충격파로 외벽이 떨어져 나가거나 기둥이 휘어지는 피해를 입었으며, 다수 건물이 반파 판정을 받았다. 도로 건너편에 있는 미호원일아파트 107·108동의 외벽은 유리가 깨지고 발코니가 붕괴하는 피해를 입었다. 거리에는 파편과 유리, 먼지가 가득해 시야 확보조차 어려웠다.

폭발 5분 후, 5층과 4층이 완전히 주저앉으며 상부 하중이 한꺼번에 3층과 2층에 전달됐다. 하층부 구조물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며 건물은 중앙부부터 가라앉기 시작했고, 약 22초 만에 미호센트럴빌딩 전체가 기울어진 채 붕괴했다. 붕괴 시 발생한 먼지와 잔해는 인근 도로를 덮쳤으며, 차량 수십 대가 파손됐다.

거리는 아수라장이었다. 폭발 직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서로를 부축하거나, 피투성이 얼굴로 먼지 속을 헤매며 도움을 찾았다. 곳곳에서 구조 요청과 절규하는 소리가 뒤섞였고, 부서진 전선에서 튀는 불꽃과 가스관 파열로 인한 2차 폭발이 이어졌다. 첫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한 건 불과 3분 뒤였으나, 폭발 직후 건물 잔해의 불길과 2차 붕괴 위험 때문에 진입은 더 지연됐다.

폭발이 발생한 직후 유고랜드 현지 언론과 SNS에는 ‘반군의 대도시 테러’라는 오보가 빠르게 퍼졌다. 당시에는 유고랜드 반군의 공격이 점점 공격적으로 변해가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당국과 시민 모두 이번 사건을 무장세력의 폭탄공격으로 오인했다. 실제로 첫 구조 요청과 동시에 경찰특공대와 대테러부대가 테러 진압 태세로 출동했으며, 도심 상공에는 무장 헬기까지 배치되었다. 다만 이후 현장 수색 결과, 사건은 반군과 무관했으며 학생들의 계획적 자살테러임이 밝혀졌다.

3.1. 폭발 이후 [편집]

첫 119 신고는 폭발 발생 1분 만에 접수되었지만, 소방본부가 출동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교통 혼잡과 잔해로 인한 도로 차단, 도로 위에 찌그러진 채로 뒤엉킨 차량이 긴급차량 진입을 막았다. 일부 구간에서는 전선과 간판 파편이 도로를 가로막아 크레인 차량이 먼저 투입돼야 했고, 이 때문에 구조 인력의 초동 대응이 지연됐다.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첫 소방차는 붕괴 직후의 참상을 목격하자마자 2단계 대응을 발령했다. 곧 인근 3개 소방서, 소방항공대, 시디벨아베스 소재 중앙구조특수팀까지 전 지역에서 지원 인력이 몰려왔다. 헬기는 인근 학교 운동장과 공터에 착륙해 중증 부상자를 긴급 이송했지만, 상공은 먼지와 연기로 시야가 극히 제한되어 착륙 시도가 위험했다. 일부 헬기는 구조용 윈치를 이용해 매몰자 인근에 대원을 하강시키기도 했다.

현장 지휘를 맡은 소방대장은 상황 파악 후 우선순위를 옥상 및 고립 구역 생존자 구조, 화재 확산 방지, 매몰자 수색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불길과 잔해가 얽힌 현장은 예측 불가능했다. 200도 이상으로 달궈진 철근 구조물이 계속 ‘핑’ 소리를 내며 변형되었고, 붕괴된 잔해 위를 오르내리는 구조대원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지면 위에서 작업해야 했다.

동시에 천일금강타워 붕괴 잔해가 튀면서 인근 유월메디컬플라자와 월동빌딩 옥상에서 화재가 발생해, 진압 인력 일부가 그쪽으로 급히 투입됐다. 상수도 라인 단절과 수압 저하로 진압이 지연되자, 일부 소방차는 인근 하천에서 직접 물을 퍼올려 불길을 잡았다. 구조팀은 열화상 카메라와 소형 드론을 투입했으나, 금속 잔해가 신호를 왜곡해 오탐이 잦았고, 구조견들은 먼지와 유독가스로 방향을 잃어 환기 장비를 추가로 설치해야 했다.

오후 12시 무렵, 중앙소방본부와 군 공병부대가 투입되며 본격적인 대규모 수색·구조 작업이 시작됐다. 현장 주변에는 임시 의료 텐트가 설치되어 부상자들이 즉석에서 응급수술과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구조된 사람들은 곧바로 군 헬기나 구급차로 인근 종합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러나 매몰자 구조는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건물 잔해 속은 불규칙하게 압착되어 굴착기 투입 시 추가 붕괴를 유발할 위험이 있었고, 구조대원들은 밀폐 공간에서 절단기와 수동 장비를 이용해 천천히 접근해야 했다.

폭발 후 2시간이 지나면서 구조대원들의 체력은 한계에 달했다. 방화복과 호흡기를 착용한 채 고온의 잔해 위를 오르내리는 작업은 극한의 체력을 요구했고, 일부 대원들은 탈수와 열사병 증세로 후송되기도 했다.

10월 18일, 오전 1시를 기해 시디벨아베스 쿠자이나 국제공항의 모든 비행기 이착륙이 금지되었다. 이 때문에 유고랜드에 접근 중이던 모든 비행기가 루이나, 플로렌시아, 사비에트 등으로 회항해야 했으며, 이 조치가 발동됨으로써 약 170대의 항공기가 회항하거나 이륙이 지연 또는 취소되었다.

오전 1시 18분경, 미호센트럴빌딩에서 첫 생존자가 발견되었다. 그는 폭발 당시 상가 주방 근처에 있었으며, 주방 기물과 벽체가 형성한 작은 삼각형 공간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구조대원들은 유압 잭과 절단 장비를 사용해 그를 구출했고, 이는 현장에서 최초로 확인된 기적적인 생존 사례로 기록됐다.

그러나 오전 2시 07분, 미호빌딩 남측 잔해벽 일부가 무너지면서 2차 붕괴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작업 중이던 구조대원 4명이 매몰됐고, 인근에서 지원하던 굴착기와 소방차 일부가 손상되었다. 군 공병부대가 긴급히 투입되어 추가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철판과 목재 빔으로 임시 지지대를 설치했으나, 매몰된 대원 중 1명은 이미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 사건 이후 지휘부는 속도를 늦추더라도 구조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생존자 발견 가능성은 줄어들었지만, 구조팀은 48시간이 지나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수차례의 작은 붕괴와 화재가 발생했으며, 구조 인력 중 일부는 연기와 분진 흡입으로 병원에 이송되었다. 폭발 2일째 되는 날, 마지막으로 구조된 생존자는 천일금강타워의 잔해 속에 있던 10대 남성으로, 무너진 책장과 콘크리트 판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버티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로써 10일 동안 진행된 구조 작업은 3명 구조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현장은 본격적인 수습 단계로 전환되었으며, 구조 활동은 잔해 제거와 시신 수습 위주로 진행됐다.

4. 피해 [편집]

5. 여파 [편집]

5.1. 교육계 및 사회적 반향 [편집]

5.2. 학생 인권에 대한 정책 변화 [편집]

5.3. 까발려진 만연한 부실공사 [편집]

6. 관련 인물 [편집]

7. 반응 [편집]

7.1. 종합 [편집]

7.2. 국내 [편집]

7.3. 국외 [편집]

8. 이후 [편집]

9. 매체 [편집]

9.1. 서적 [편집]

9.2. 영화 [편집]

9.3. 드라마 [편집]

9.4. 다큐멘터리 [편집]

9.5. 그 밖에 [편집]

9.6. 당시 방송 및 뉴스 [편집]

10. 기타 [편집]

11. 관련 문서 [편집]

[1] 유일한 생존자이자 테러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 않은 학생. 나머지 테러 가담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책으로 기록했다.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솔민의 동생이다.[2] 말이 일부 손상이지 실제로는 외벽에 큰 금이 가고 천장이 내려앉는 등 심한 충격을 받아 상기한 건물들과 같이 철거 진단을 받은 상가가 수두룩했다. 미호빌딩에서의 폭발력이 컸던 건지 부실공사 때문에 건물이 약했던 것인지는 불명.